20169102 이웃집에 신이 산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부끄러운 일이다. 나의 글을 보여준 다는 것은 나의 치부를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운 일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을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조금 더 어렵고 유식한 말로 리뷰를 하고 싶어서, 나와 다른 새로운 해석이 있는지 찾고 싶어서,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등등의 이유로 어제 본 영화를 어제 리뷰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 새로운 소재라는 말이나 기발하다 뭐 이런 말은 누구든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나만의 나의 시선으로 나만의 비틀기로 글을 써본다.
각자의 음악.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음악이 있으며, 에아는 그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나만의 음악이라.. 그러면서 에아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 어떤 음악이라고 말해주길 바랄까. 다시 말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길 바라는 걸까.? 사람들은 그걸 잘 깨닫지 못한다.. 뭐 이런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이 그들의 남은 수명을 알고 난 후에 대처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그대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남은 수명을 시험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모두들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이상하게도. 남은 날을 알지 못했더라면 하지 못했을 일인데, 알았기 때문에 하게 된다. 이것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그 어떤 것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죽을 날을 모르기 때문인 것인가?(ㅋㅋ) 아니 그렇다면 내가 나의 남은 날을 알지 못함으로 내가 얻게 되는 건 무엇이지? 허허.. 음...오늘 하루도 어제 같을 수있음에 대한 감사함? 내일이 나에게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인간의 삶과 죽음이 바로 신의 존재 이유 일수도 있겠다는 발칙한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프랑수아의 사랑이나 마틴의 사랑이나, 비정상적(이런 단어를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이라 생각했겠지만
왜인지 이 영화에서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그 나름대로 행복을 찾아보려 애쓰는, 나와 같음을 느끼게 되는 것 보니 나, 이 영화에 꽤나 몰입했나보다.
영화가 끝나고도 윌리의 음악인 샤를 트레네의 La mer가 웅얼 거렸다. 감독님은 더 깊은 뜻을 영화에 담아 놓았을지는 몰라도, 내가 느낀 것은 간단했다.
인생을 겸허히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ㅋㅋ)영화 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으나 휴, 내가 못하는 게 바로 한줄평이니.... 이런 영화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