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길이란
2017년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나는 글을 쓰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감성을 움직이는 글보다는, 논리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의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업이고 싶었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첫 해.
9시 출근 9시 퇴근을 포함한 엄격한 규칙들과, 실수에 관대하지 않은 분위기, 수직적이고 고압적인 위계질서, 두렵기만한 교수님과의 독대 등으로 인하여 나는 늘 긴장 상태였고, 두려웠다. '잘' 하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었다. 배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발표하고, 실험하고, 생각하고... 이 과정들을 거의 무한히 반복해 가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리고 작은 논문 하나를 냈고, 또 몇 개의 주제를 연구하고, 어찌저찌 진행 중이다.
논문을 쓰고 과제 제안서를 쓴다. 논문을 리뷰하는 글을 쓰고, 과제 제안서를 검토하는 글을 쓰고, 검토한 글을 다시 표로 정리하고, 표의 내용을 다시 또 내용으로 쓰기도 하고, 여전히 나는 쓰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
나는 실험을 하고 있고, 논문을 쓰지만 정작 연구는 하고 있는가? 에 대한 물음에는 답을 하지 못하겠다. 기계적으로 해오던 일을 하고 있지만, 심지어 재미도 있지만, 나는 연구자의 마인드가 없다.
그리고 나는 별로 똑똑하지도 못하다. 할 수 있는 연구를 무한정 뱉어내는 동료 연구자들을 보면서, 일분일초를 쪼개어 연구하고 협력하고 글을 쓰는 동료 연구자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 것만 같다.
나는 연구가 하고 싶던 게 아니라, '멋져보이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그럼에도 꾸역꾸역 학위를 딴 나는 이제 어떤 일을 해야할까.
내가 보기에 멋져보이는 일을 할 게 아니라, 내가 멋지게 해낼 일을 해야하는 게 아닐지.
어쩌저찌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는 당장은 일분일초를 쪼개어 논문을 써내고, 과제 제안서를 작성해야한다는 것이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