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있어왔던 믿음은
내가 열심히 한다면, 끊임없이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는 뭔가를 이룰 것이라는 것이다.
뭔가를 이루고 난 후에는 지금처럼 부지런히 살지 않아도, 치열하지 않아도, 열심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뭔가는 결국 직업적 성취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꾸 의문이 생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하여 내가 원하는 직업을 얻게되면? 그 다음은?
나는 또 지금 하는 일을 끊임없이 열심히 해야만 그 직업을 가진 전문가로서 살아갈 수 있다.
단순하게 어떤 직업을 가지면 내 인생 만고 땡일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즈음 드는 생각은 이렇다.
삶의 연속적이다.
되돌아 봤을 때, 그저 편의상 시기를 구분 지을 수는 있으나
여전히 ongoing 한 나의 삶은 분절될 수 없다.
그저 연속적인 선 위의 한 점을 걷고 있다.
높고 험준한 산을 등반 중인 나는 하나의 등성이를 넘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잠시 내리막 그리고 다시 또 새로운 등성이가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그렇다.
끝나지 않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쉽게는 살 수는 없다.
이것은 왜 그렇지? 아무렇게나 살아버려도 될 일인데.
이건 아직 확답을 내리진 못했다.
다만 막연하게 드는 생각은 날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보다 무엇으로 살아가게 하는가?가 더 좋은 질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basal로 주어지는 게 내일이고, 삶이다. (그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므로, 나는 이왕 사는 이 삶을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을 냈다.
나는 이왕 사는 내 삶이 행복으로 가득 차길 바라지 않는다.
고통스럽고 또 지난하지만 그 와중에 행복을 느끼는 한 순간으로 또 버티어 내는 것 혹은 지나가길 바란다.
그럼 나의 근원적 불안함이 다시금 해소가 된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또 지난한 이 하루하루가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 와중에 행복을 느끼며 살기로 결심한 주체가 바로 나이다. 그러므로 난 당연히 불안하다.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지난하다. 하지만 나는 뭔가를 이루려고 사는 게 아니라, 이 과정 자체가 사는 것이다. 불안하고 미성숙하고 흔들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며, 노력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불안해지지않고, 성숙하고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만 나는 당연한 것을 인정하고자 한다.
이 과정 자체가 삶이라는 것.
이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
뭔가를 이루어내는 것에 치중하여 목적을 잊지 않을 것.
그 과정의 불안함을 인정할 것. 불안함이 당연하지만, 불안함에 휩쓸리지 않을 것.
그리고.
삶은 연속적인 '선'이 아니라 어떤 '공간' 같기도 하다.
난 어떤 공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참 복잡하고 또 단순하다.
그래서 버겁다가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