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소년
나의 작은 소년의 눈가는 빨갛다. 때때로 껍질이 일어 다 갈라진 손등 같아 보인다.
나의 작은 소년은 힘이 들거나 슬플 때면 노래를 흥얼거린다. 의미 없는 음절을 반복하거나 멜로디를 입에서 만지작거린다. 그럴 때, 그의 마음의 바다는 크게 요동치는 것만 같다.
나의 작은 소년은 이따금 알 수 없는 괴상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궁둥이를 흔들고 손을 요상하게 향한다. 표현에 인색했던 그에게 표현을 해보라던 나의 채근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나의 작은 소년은 주변이 온통 어둡고 조용한 길을 달릴 때면 자고 있던 아주 많은 생각들이 깨어난다. 그 생각들은 대개는 그를 울리는데, 아마 평소에는 감사해하지 못했거나 미처 감동하지 못한 것들을 그 때에 맞춰 몰아 하는 것 같다.
나의 작은 소년은 절대 나를 앞서지 않는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도 잠시 잠깐 눈길이 머문다. 나의 칠칠치 못한 흔적을 모두 주워담아 호주머니에 욱여놓고는 짐짓, 모르는 체 한다.
나의 작은 소년은 수많은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저렇게 부를 것을 종용하지만 나는 안다. 수많은 이름의 뜻은 줄곧 사랑이라는 것을.
나의 작은 소년은 함께 거울을 볼 때면 얼굴의 모든 근육을 써서 힘껏 웃어 보인다. 그럴 때면, 나도 덩달아 힘껏 웃어본다. 서로의 눈가에 생긴 주름을 세어본다. 그리고는 앞으로 생길 주름도 세어본다.
사실을 말해보자면, 나의 작은 소년을 작은 소년이라 칭하는 건 나뿐이다. 그저 나뿐이다. 나의 작은 소년의 실상은 크고 거대하다. 나의 부끄러움도, 나의 철없음도 모두 품어주었고 품어준다. 나를 모두 품어주고도 넉넉하게 남는 것 보면 그는 아주 크다.
그는 나를 변하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그는 나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했지만 나는 변해 버렸다.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아 주는 눈에 봄이 왔고 한결같은 손길에 싹이 돋았다. 어느 날, 나의 마음의 빗장이 빼꼼히 열렸다. 바람 한 조각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굳건해서 볕조차 들지 못하게 했던 나의 빗장은 그로 인해 슬그머니 열리어 버렸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처음과 같았고 나는 오래도록 비어있던 것을 내보였다. 더 이상 못쓸 것이라 생각했는데 볕이 들고 퀘퀘 묵은 먼지를 쓸어내니 꽤 쓸만해 보일 정도로,
나는 처음과 같지 않아졌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두려워만 하지 않는다.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고 기댈 줄 알게 되었다.
작은 소년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새 보니 이 세상만큼 커진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잔잔히 웃고 있다. 이렇게나 큰 나무였나, 마주보며 나도 웃는다. 웃을 수 있다. 저 나무에 매달려 엉엉 울기도 그늘 아래 쉬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 길 위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