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김용택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
강물은 깊어졌어
한없이 깊어졌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
그냥,
있었어
이런 시는 가을에 읽으면 읽는 맛이 난다.
마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호젓하게 걸어가며 시를 중얼거리는 한 편의 장면이 떠오른다.
한 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한 해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또 출발점으로 향해간다.
똑같은 가을이 와도, 올 가을은 작년 가을과 같지 않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새로울 것 없이 같은 것 같지만, 내가 달라졌기에 같지 않다.
떨어지는 낙엽이 작년의 낙엽이 아니듯, 이 가을을 걸어가는 나도 작년의 내가 아니다.
아닌 게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