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무-김용택

그라쎄 2016. 10. 3. 00:21

나무

김용택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

강물은 깊어졌어

한없이 깊어졌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

그냥,

있었어





이런 시는 가을에 읽으면 읽는 맛이 난다.

마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호젓하게 걸어가며 시를 중얼거리는 한 편의 장면이 떠오른다.

한 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한 해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또 출발점으로 향해간다.

똑같은 가을이 와도, 올 가을은 작년 가을과 같지 않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새로울 것 없이 같은 것 같지만, 내가 달라졌기에 같지 않다.

떨어지는 낙엽이 작년의 낙엽이 아니듯, 이 가을을 걸어가는 나도 작년의 내가 아니다.

아닌 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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