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몇 글자 있지도 않은데, 살풋 웃음이 일게 만든다.
왜, 그럴 때 있다.
그냥그냥 길을 가다가
마음 한 구석이 갑자기 멍해지고
주위의 공기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질 때.
그럴 때는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게 고맙고
나무 냄새가 나는 게 고맙고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가 고맙다
이런 순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이 견뎌지는구나
그래서, 살 만하구나 할 때.
오늘, 내 곁에 살풋 내릴 낙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