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감사한일이다(기도)

그라쎄 2016. 11. 23. 00:04

2016년 11월 22일의 기록


나는 오늘, 하수상한 시대에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나에 대해 쓴다. 


 늘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시민의 일원으로써 참여는 당연한 것이며, 아무리 그 나물에 그 밥같은 정치인들이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써 무관심은 죄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적극적인 참여를 할 기회가 오면 두번 망설이지 않고 참여할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는 나의 오늘에 치이고 내일에 치여 애써 방관자가 되어있었다. 지식인이든 지성인인이든 이 비스무리한 사람이라도 되고 싶어 했던 나는 현실에 종종거리기 바빴다. 

 어찌 나만 그러랴.  그래서 황금같은 주말을 바쳐가며 목소리를 내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 일신의 안위만 살피며 숨 죽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손 잡고 광장으로 나아가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 깨어있는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이 있는 한, 그들이 원하는대로만은 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반백년도 전에 거리로 나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바쳐진 시를 붙인다. 


기도

-4.19순국학도 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김수영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륙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쾡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그러나 정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우리가 쥐가 되고 삵쾡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죄 있는 몸의 억천만 개의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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