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다.

어떤 사람

그라쎄 2017. 6. 7. 22:56

내가 살면서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타인의 판단으로 또 다른 타인을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누군가는, 오로지 나의 경험만으로 기억되고, 느끼고 싶었다. 


사실, 내가 가진 모습이 그 어떤 모습이라 하더라도, 이 것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은 그 모습 그대로 일 수 없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의 삐죽한 하나의 모습 중, 단편적인 모습들만 보일 것이고, 

그 모습을 본 타인은, 날 그 단편적인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진지한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호들갑떠는 모습만 봤다면 난 그저, 호들갑떠는 사람, 일 뿐일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러므로 사람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지금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아마 그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일 수도 있고, 타인에게 용인된 자신의 제한된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타인의 타인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을 거라 자만하며 살았는데, 

역시 자만은 자만이다. 


살고 있다는 것이,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과정인거라는 말을 언젠가 쓴 적이 있다. 

나는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살 수록 느끼게 되고 절실히 알아간다.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착각이고 자만이였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깃꾸깃 버텨보려했는데, 버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나의 오만한 자존심이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나의 코드가 있고 취향이 있으며 성향이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래서 말이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 가, 판단되는 가, 이런 것 연연해 하지 않기로 했었지만, 

다시한번 다짐하게 된다. 


나는, 그저 나이고 나는 나의 행복을 추구하며, 즐거이 살 것이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 

그렇기 때문에, 옳은 것은 옳다 말할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할 것이다. 부당한 일에는 힘써, 눈을 동그랗게 뜰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사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이 길의 이유는 사실 이 것이다. 

나의 소신을 소신껏 밝히고 휘둘리지 않으며 조금 더디더라도 나의 길을 뚜벅, 가기 위해서. 

내가 살아온 그 길 위에, 부끄러움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길 바란다. 


꽤 긴 글을 한 호흡에 뱉어냈다. 그냥, 오늘은 이런 날이다.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쏟아질 수록 나의 강단을 믿어본다. 아무리 나를 흔들어 봐라, 내가 흔들리나. 이런, 나의 오기같은 것이, 마구 발동하는 날이다. 

남을 배려하고, 내가 손해보고, 남을 믿어주고 웃어주며 순수한 친절을 베풂에도 불구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걸, 넘나게 보여주고 싶은 날이다. 

'기록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물-천상병  (0) 2017.07.13
처음처럼  (0) 2017.06.10
아무 말  (0) 2017.06.04
다시한번 라라랜드.  (0) 2017.05.30
모두의 마음 속에 살고 잇는 조르바.  (0) 2017.05.27